스페인어 회화, 스페인에 대한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만든 블로그입니다.

2018. 3. 24.

how I met your mother


"어떻게 만났어요?"


'how I met your mother' 드라마는 본적 없지만 '어떻게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기엔 적절한 제목 같아서 붙였습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둘이 어떻게 만났어?" 이기도 하고, 오늘은 뭐 쓰지 고민하던 차에 와이프가 우리얘기 한번 써보는거 어떠냐고 해서 회상도 할겸 소설 형식으로 써보려고 합니다. 저희 사진은 올리지 않겠습니다. 제가 인터넷에 제 얼굴 사진 올리는 데 약간 거부감이 있어서요 :)
하지만 아주아주 가끔 드물게 인스타에 와이프 사진은 올리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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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워홀러 생활을 하고 있을 때다. 당시 법이 워홀러들은 한 직장에서 6개월까지만 일할 수 있었기에 첫 잡이 끝나고 다음 일을 찾고 있던 때였다.
그러다 어느 날, 불알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야, 이번 휴가때 스페인 여행할건데 같이 가자"
그 친구도 한때 혼자 여기저기 여행하기 좋아하던 친구였는데 이제 결혼하면 혼자 여행도 못하니까 마지막으로 하는 여행이라고, 동행하자고 했다.
"스페인? 왠 뜬금없이 스페인"

스페인. 그동안 관심이 하나도 없던 터라 막연히 유럽 어딘가라고만 알고 있었을 뿐 정확히 어딘지도 모를 정도로 낮선 나라였고 이제 영어도 겨우 하는데 스페인어라니, 말 더더욱 안통하겠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이 홀라인가? 하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일도 안 구해질 것 같고 그동안 일하며 모은 돈 방세로 까먹느니 에라 모르겠다 여행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자 하고 마음먹었다.
당시 sharedtalk라는 언어교환 사이트에 푹 빠져있을 때였다. 여러 나라 사람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게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언어교환이라고는 하지만 처음에만 이것저것 알려주고 물어보고 하다가 결국엔 영어로 말하는 사이가 되지만 그래도 외국인 친구를 만든다는게 꽤나 재미있었다. 그래서 스페인 여행을 준비하면서 스페인어나 몇마디 배울까 하고 스페인어권 친구를 찾기 시작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배울 수도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친구를 사귀면 발음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잇점이 있으니 말이다.
며칠 후 두세명에게 답장이 왔고 그 중 한 사람이 지금의 와이프 viki였다.

스페인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몰랐기에 여행지 추천부터 간단한 표현까지 이것저것 물어보며 viki와 연락을 하고 지냈다. 그리고 꾸준히 이런저런 사적인 얘기도 나누며 점점 가까워졌다.
viki는 때때로 노골적으로 내가 맘에 든다고 대시하곤 했다. 내 얼굴에 여러가지 따질 자격은 안되지만 처음에 viki는 솔직히 내 타입이 아니어서(미안하다 와이프야.. 하지만 그녀도 알고 있는 사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냈다. 이후 이런 저런 얘기를 계속 나누면서 참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 나도 마음이 열려가고 있었다.

여행을 한 달 앞두고 빈둥거리는 호주 방콕 생활이 지겨워질 즈음. 미리 스페인에 가서 viki랑 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낼 곳이 문제였다. viki가 사는 곳은 시골이라 숙박할 수 있는 곳이 마땅히 없었고, 있다고 해도 한달이나 숙박을 하면 여행비가 숙박비로 다 나갈 판이었다.
그래서 한달 버티다가 여행이나 가야겠구나 하고 포기했는데 viki가 부모님에게 자기 집에서 지내도 된다고 허락을 받은 것이다.
갈까 말까 또 며칠 고민했다. 주변에서는 위험한 사람들이 낚는거면 어쩔거냐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하긴 고민할만도 한게, 생판 모르는 외국인 남자애를 한달가량이나 머물게 한다는게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viki는 "네가 착하게 생겨서 허락하신대"라고 했다.

계속 제 자랑해서 죄송합니다.

짐을 싸들고 공항으로 향했다. 호주 꿀은 종류도 많고 유명하기 때문에 몸에 좋다는 성분이 든 꿀을 viki 부모님 선물로 드리려고 샀다.
스페인으로 날아가는 여정도 쉽지만은 않았다.
환승지였던 말레이시아서는 '다른 국제공항'으로 이동해야 됐었는데 그걸 몰랐다. 늘 그렇듯이 같은 공항 안에서 갈아타면 될 줄 알고 넋놓고 있었다. 마침 알고 지내던 말레이시아 친구가 여행가이드여서 가는 길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안그랬다면 큰일날뻔 했다.
그렇게 말레이시아에서 이탈리아 공항으로 무사히 향했다.
이탈리아 공항에서는 더 일이 꼬였다. 몇 시간 지루하게 기다리는 동안 앉아서 깜박 잠이 든 것이다. 내가 타야 할 탑승구 게이트가 바뀌어서 안내 방송이 나오는 것도 모르고 그렇게 잠을 잤다. 나중에 탑승구로 가니 마드리드로 가야할 비행기가 보이지 않아 당황했다.
나중에야 게이트가 바뀐걸 알고 바뀐 게이트로 헐레벌떡 뛰어갔지만 이미 들어가는 문은 닫혀있었다. 안내데스크에 가서 물어보니 비행기를 놓치면 어쩔 수 없다고 티켓을 다시 사야 한단다.
보통 다음 비행기 자리가 있으면 태워주지 않냐고 물어보니 수속 절차 밟는 곳으로 다시 나가서 물어보라고 했다. 출구로 나가서 수속하는 곳을 찾아가 물어보았더니 다행히 다음 비행기 티켓을 새로 끊어주었다.
'휴, 다행이다'
그런데 다음 비행기까지 6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오 마이 갓..
공중전화를 찾아 viki가 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국제번호까지 정확히 눌렀는데 자꾸만 왠 남자가 받는 것이었다. 스페인어를 하나도 몰랐기에 영어로 viki 폰 아니에요? 라고 물었지만 알아듣지 못할 말만 하다가 끊어버린다.
'망했다.'
아마 내가 자꾸 번호를 잘못 누르는건가 싶어 전화걸기를 그냥 포기했다. 스페인에 가서 다시 전화를 해보면 되긴 하겠지만 6시간에 비행기로 날아가는 시간까지 7,8시간을 마냥 기다리지는 않을 것 같아서 공항에서 하루 노숙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나저나 내 캐리어는 먼저 스페인에 가 있겠구나'

새 티켓을 들고 다시 공항에 들어가려면 짐 수속을 해야 했다.
호주에서 캐리어를 먼저 부치고 면세점에서 꿀을 산 거라서 꿀과 백팩 하나만 가지고 있었다. 근데 문제는 이탈리아에서는 꿀이 금지품목이라는 것. 아마 액체라 그랬던 건가? 몇 년 지난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여간 영수증도 확인 하고 동료를 불러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더니 결국은 안된다고 못가지고 들어간다고 해서 뺏겼다.
'초면에 빈손으로 가게 생겼네' 싶어서 정말 속상했다. 하지만 법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는 일.
그렇게 6시간을 기다렸고, 아니나 다를까 또 게이트가 바뀌었지만 이번엔 안자고 기다렸기 때문에 방송을 듣고 바뀐 게이트로 갔고 그렇게 드디어 마드리드로 가게 되었다.

별 기대 없이 출구로 나왔는데 viki가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한달음에 달려와 안아주며 안오는줄 알고 걱정했는데 다행이라며 너무 기뻐해줬다.

우리는 이렇게 만났다.
의외로 둘이 잘 맞아서 장거리 연애를 이어갔고,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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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오랜만에 옛날 생각하니까 재미있네요. 그리 오랜 세월이 지난 것도 아닌데 가물가물한 부분도 있고 말입니다. 기회가 되면 일상생활 얘기도 쓰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커플분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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