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어 회화, 스페인에 대한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만든 블로그입니다.

2023. 1. 26.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요즘 이야기

 


 

얼마 전부터 동네에 있는 한 주류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급여는 거의 최저임금 수준이지만
일이 그렇게 어렵지 않아서 하루하루 왔다갔다
하다보니 일한지 벌써 8개월이 넘었다.
(기계가 낡아서 생산하는 시간보다
수리하는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질 때가 많아
그게 좀 스트레스이긴 하지만)


본업은 편집디자인이지만 그쪽도 박봉이다보니
나름대로 이것저것 다른 분야도 배워보고
구직활동도 해봤지만 다 실패하고
흘러흘러 공장까지 오게 되었다.


공장에서 일해본 적은 없어서 처음엔 꽤 겁을 먹었다.
손가락이 잘려나가진 않을까,
검색해보니까 텃세도 심하고 그렇다던데 등등..
그런데 의외로 다들 친절하게 대해주고
내가 그 회사에 처음 입사한 동양인이다보니
초반엔 호기심에 많은 관심을 받았었다.


특히 사장의 장녀가 생산라인을 담당하고 있는데
내가 아무런 관련 경력도 없고 외국인이라서
걱정을 많이 했지만 '한국인 노동자'를
겪어보고 난 지금은 너무 만족해 하고 있다.


그래서 그 동안 일하면서 느낀 것들을 몇 가지 적어보려고 한다.


1) 수평관계


한국에서 30년 가까이 산 나는
수직관계에 익숙해져 있었다.
군대든 회사든 동기 말고는
무조건 나보다 '위' 아니면 '아래'이지 않은가?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짧게 일한 사람이 5년차고 그랬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동료들을 상사처럼 대하는게
티가 났나보다. 


어느날 한 동료가 이런 말을 했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네 상사가 아니라 동료니까 편하게 대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고"

일하면서 잘 관찰해 보니,
동료들끼리만 이런 것이 아니었다.
관리자급 상사들도
'난 그냥 직급만 다를 뿐 우린 모두 동료'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시키는 일은 잘 따르지만 간단히 말해서
눈치를 보거나 이러지는 않는다. 
(임원들 눈치는 당연히 본다 ㅎㅎ)

여하튼 나도 이제는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이곳만의 분위기일지도 모르지만
다른 직장도 대부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2) 사람들이 밝다


이건 스페인 사람들의 일반적인 특성이긴 하지만,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그럴 줄은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어떻게 다들 그렇게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지
나처럼 맨날 졸리고
기운 없는 사람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데 나도 여기서 일한 뒤로
예전보다 더 젊고 건강해진 느낌이긴 하다.
역시 몸은 계속해서 움직여줘야 한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다.


그리고 말을 많이 하면 더 힘들 것 같은데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 끝이 없는지
농담도 계속 하고 정말 대단하다.


3) No 빨리빨리


'빨리빨리'
한국인이라면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는
성격인데, 몸에 배어버릴대로 배어버린
덕분에 모든 일을 빠르게 하려고 했었다.


매번 이런 모습을 볼 때면 
이렇게 말하는 동료가 있다.
'워워 침착해, 침착하라구' ㅎㅎ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면 좋겠지만,
오히려 서두르다가 일이 더 꼬이는
경우가 종종 있게 마련이다.
특히 사고가 나면 크게 다칠 우려가 있는 
공장 같은 곳에서는 오히려
천천히 침착하게 일하는게 
결국엔 더 빠르게 하는 길인 경우라는 걸
몇 번 몸으로 겪고 나서 배우게 되었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아니라면
느리다고 뭐라 하거나
"야! 빨리빨리 좀 해!" 하면서
소리치는 사람이 없으니
이런 점은 좋긴 하다.


그리고 기타로..
2023년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작년에는 공휴일이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있었다.
잊을만 하면 쉬고
잊을만 하면 또 쉬고,
8월에 휴가도 15일 쓰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1월 26일에도 
휴가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1년에 휴가가 30일이나 있어서
여름, 겨울에 반반 나눠서 보내거나
아예 몰아서 30일간 긴 휴가를 보내는
동료들도 있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별로일지 모르지만,
2023년에도 쉬는 날좀 많았으면 하는게
개인적인 입장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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